[Weekend Interview] 가수 아이유의 '라일락' 만든 의사 겸 작곡가 닥터 조
닥터 조가 각종 컴퓨터와 스피커, 키보드 등 장비가 가득한 서울 강남구 언주로 녹음실에서 음악 파일들을 살펴보고 있다.
이제 '한 우물만 파야 성공한다'는 금언이 낡아 가는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동안 일종의 부업, 겸업에 그치던 '부캐'가 종종 본업인 '본캐'가 되는 사람들도 나타나고 있을 정도다. 하나만 제대로 하기도 힘들어 허덕이는 이들의 시선에서는 과연 어떻게 그런 삶을 사는 것인지 고개가 갸웃거려지기도 한다.
최근 작곡가로 왕성한 활동을 펼치는 닥터 조(Dr. Jo) 역시 그런 사람이다. 모두가 인정하는 의사라는 좋은 직업을 부캐로 끌어내리고, 정식 교육을 받은 안정적인 길 대신 자신의 꿈이었던 작곡이야말로 진정한 본캐라고 말하는 그에게 만남을 청했다. 강남의 한 녹음실에서 만난 그와의 대화 속에서 복수의 직업을 통해 수입을 늘리고, 자아실현까지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비법을 들을 생각이었지만 대화가 진행될수록 결코 쉬운 길은 아니라는 생각이 깊어졌다.
―본인이 작곡한 '라일락'이 가수 아이유의 지난 앨범 타이틀곡으로 음원 차트 1위까지 오르며 알려지게 됐다.
▷처음에는 타이틀 곡이 될지 몰라 크게 기대를 안 했었다. 멜로디 라인을 내가 만든 뒤에 다른 작곡가분들이 트랙을 마저 만들어주시고 믹싱까지 다 끝난 다음에야 뒤늦게 타이틀 곡이 된 것을 알았다. 정규 앨범이고 곡이 많으니 내 곡이 타이틀이 될 거라는 생각을 못 한 거다. 아이유 씨는 녹음할 때도 메인 멜로디뿐 아니라 코러스까지 너무 잘하셔서 감탄했다. 가이드 녹음만 들어봐도 이미 본녹음 수준으로 하시더라. 기쁘긴 했지만 내가 라일락을 썼다고 해서 그다음 곡도 잘 나온다는 보장은 없으니 앞으로 더 잘해야 한다. 작곡가는 안심할 수 없는, 안심하면 안 되는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의대에 들어가서 작곡 일을 한다는 것이 신기하게 보인다.
▷어릴 때 평범하게 학교를 다니며 말썽 피우지 않는 모범생이었다. 천주교 신자라서 봉사하고 싶다는 사명감도 있었고, 이과에 진학하기도 해서 막연하게 의사를 꿈꾸게 됐다. 음악 듣는 것이 취미이긴 했고 팝보다 가요를 좋아해 어릴 때부터 H.O.T나 박진영, 보아, god 등의 음악을 열심히 들었지만 작곡으로 돈 벌 수 있다는 생각은 못 하고 공부를 했다. 그러던 중에 친구가 급식실 앞에서 곡을 직접 만들 수도 있다며 케이크워크(Cakewalk)라는 프로그램을 알려줘 그날 바로 내려받아서 이것저것 만들어보기 시작했다. 유명한 곡을 비슷하게 베껴 보기도 하고, 직접 만들어 보기도 했는데 정식 음악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보니 지금 생각하면 듣기 어려운 수준이긴 하지만 그래도 작곡을 평생 즐기고 싶은 취미라는 생각을 했다.
―취미였던 작곡을 일로 시작한 계기는.
▷재수까지 해서 8월에 수시로 고려대학교 의대에 붙었다. 이후 낙원상가에 가서 작곡을 취미로 하고 싶은데 필요한 장비가 무엇인지 물어가며 이것저것 샀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피아노 친 기억을 떠올려 키보드도 함께 샀는데 잘 안 되더라. 악기를 못 다루면서 작곡을 한다는 것이 아쉽기도 하지만 컴퓨터로 작업하는 것이 내게 맞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본과에 들어가기 전이 취미를 즐길 수 있는 시기라고 생각해 예과 시절 동안 많은 곡을 만들었는데 그러다가 운 좋게 2008년에 작곡가로 데뷔할 수 있게 됐다.
―빠르게 데뷔한 비결이 무엇인가.
▷작곡한 곡들이 쌓이면서 유명 기획사에 보내보기도 했고, 인터넷 카페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박진영 프로듀서도 만나 뵙고, 방시혁 프로듀서를 통해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물론 지금은 범접할 수도 없게 유명한 분이지만 당시에도 성공한 작곡가였는데 후배 양성 차원에서 인터넷 카페를 열어서 작곡가가 되고 싶은 이들에게 조언을 해주셨다. 그 카페에서 열심히 활동하며 막 10곡씩 매시업해서 올리고 그랬더니 연락이 와 만날 수 있게 됐고, 거기에서 더 나아가 혼성그룹 에이트(EIGHT) 2집에 수록곡으로 '또 한걸음'이라는 곡을 실을 수 있게 됐다. 본과 1학년 때 발매됐는데 해부학실에 앉아서 그 앨범을 들었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그때 방시혁 프로듀서님이 "의대생과 작곡을 병행하기는 어렵겠지만 재능은 있어 보인다"고 해주신 말이 계속 꿈꿀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실제로 의대생 공부와 작곡을 병행하기는 쉽지 않은 일처럼 보인다.
▷정말 그랬다. 봐야 할 공부량이 워낙 많아서 2008년부터는 의대생으로 열심히 살았다. 어떻게든 의사 면허는 따야 하니까 공부부터 열심히 해야 했다. 천재 타입은 아니어서 사실 의대에서 학점도 안 좋았고 남들 따라가느라 고생했다. 게다가 건강 문제도 있었다. 시험 보고 너무 어지러워서 병원에 갔더니 혈압이 180까지 나왔다. 혈압약을 20대부터 먹어야 한다는 사실에 울적하고 그랬다.
―작곡을 다시 하게 된 것은 언제부터인가.
▷의사 국가고시에 붙은 후 양구, 철원으로 넘어가 공중보건의 일을 하면서부터다. 예전의 인연을 계기로 JYP에서 작곡할 수 있게 됐다. 사실 이것도 겸직 금지 조항 때문에 조마조마했는데 4대 보험이 적용되는 일이 아니라 퍼블리싱 계약을 맺고 작곡할 수 있게 됐다. 그 이후로 갓세븐, 버나드박, 미스A의 페이 등에게 곡을 만들어줬다.
처음에는 남자 곡 위주로 썼는데 트와이스의 '젤리젤리'라는 곡의 작사와 랩메이킹을 하면서 여성 아티스트들과 함께 일하는 빈도가 늘어났다. 트와이스 멤버 9명과 녹음을 같이 해보니 정신 없는 만큼 공부도 많이 됐다. 내 스스로가 남자이긴 하지만 여성 아티스트들과 일해 보니 그게 내가 가지지 못한 감성들도 표현할 수 있는 길이더라. 하지만 많은 이들이 아는 히트곡을 만든 것은 아니어서 그만둬야 할지 고민도 많았다.
안정적인 일도 아니고, 창작이라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이기도 해서 다 잊고 난 뒤에 다시 의사만 제대로 하자는 생각으로 난생처음 비즈니스 티켓까지 끊어서 태국과 대만 여행을 떠났는데 우습게도 여행 도중 작곡을 더 해도 되겠다는 확신을 얻었다. 공항에서 유심칩을 갈아 끼우고 폰을 켜니 트와이스와 구구단 앨범에 내 곡이 들어갈 수 있게 됐다는 연락이 와 있더라. 특히 구구단의 '나 같은 애(A Girl Like Me)'라는 곡은 작사 작곡 편곡 전부 직접 하면서 타이틀 곡이 되어 개인적으로도 의미가 깊다. 그 이후에 역주행하면서 뒤늦게 인기를 끌기도 했다. 원더걸스 출신 가수 유빈 씨와 함께 작업한 '숙녀' 같은 곡도 마찬가지로 뒤늦게나마 시티팝 장르가 유행하며 알려지게 됐다.
―의사로서는 어떻게 일해 왔는지도 궁금하다.
▷말은 이렇게 해도 생각처럼 작곡가로 잘 안 풀려서 슬럼프도 겪었고, 작곡만으로 먹고사는 것이 쉽지 않다고 생각해서 의사로도 일했다. 의사 면허를 딴 이후에 인턴, 레지던트를 거쳐 전문의까지는 하지 못했기에 아르바이트 느낌이긴 했다. 양방을 같이하는 한방병원에서 일하며 엑스레이 물리치료 도수치료 등 처방하고 그랬다. 이후 같은 네트워크 병원으로 해서 강남, 광화문 쪽 등 다양한 곳에서 의사로 일해봤다. 우선 면허까지는 반드시 따고, 그 후에 내 꿈을 따라가 보자는 생각을 했던 터라 올해부터는 일단 한동안 작곡에 집중하는 중이긴 하다.
―둘 다 해보니 작곡과 의학이 서로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
▷작곡가로서 내 음악을 들으면 객관화가 잘 안 되다 보니 환기가 되는 장치가 필요하다. 의사 일을 하면서 직접 음악을 들으면 다른 사람이 돼 청자 입장에서 내 음악에서 고칠 부분도 알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반대로 보면, 음악을 하는 것도 의사 일에 도움이 된다. 어떻게 보면 불특정 다수의 사람을 가장 많이 만나는 직업 중의 하나가 의사인데 원래 나는 내성적인 성격인 데다가 가만히 있으면 험상궂은 인상이라 환자분들 만나서 대화하는 게 증상에 맞는 처방을 내리는 것보다 더 어려웠던 사람이다(웃음). 음악 활동을 하면서 기존에 학교에서 만나던 이들과는 다른 새로운 사람도 많이 만나게 되고, 음악 신에서의 경험이 결과적으로 고마운 일이었다. 예명인 닥터 조(Dr. Jo) 역시 의사이기에 가능한 이름 아닌가. 본명은 조민형이고 첫 예명으로는 조울이라는 이름을 썼는데 조울증 관련 이름이냐는 핀잔을 듣고 또 바꾸게 된 거다. JYP에 있을 때 다 같이 의논하고 투표해서 정했는데 아무래도 의사 출신이라는 걸 알리는 게 특이하고 재밌어 보였는지 이런 결과가 나왔다.
―반대로 두 가지 일을 하느라 어려운 부분은.
▷일단 두 가지 일을 같이 할 때는 절대적으로 시간이 너무 없다. 작년에 유빈 씨와 '향수'라는 곡을 작업할 때 많이 느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출근해 일하고 밤에 음악작업을 하려면 점심시간이라도 좀 자야 하는 데 그때도 작사 수정하고 하면서 아예 쉬는 시간이 없었다. 병원에서 졸면 안 되니까 피로회복 음료와 커피를 너무 마셔서 위가 안 좋아졌을 정도다. 작곡가도 창작자니까 많은 경험이 필요해서 영화도 보고 친구와도 놀고 그래야 하는데 의사는 바쁘게 일하는 일이라 병행이 어렵긴 하다. 올해부터 병원 일을 쉬는 이유 중의 하나다.
―좋아하는 일과 인정받는 일 사이에서 선택하는 것은 행복한 고민이 아닐까.
▷이도 저도 아닌 사람이 될까 두려웠다. 의대 친구들은 날 별난 애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실습 같이했던 친구들은 신기해하고 축하도 해주지만 별로 친하지 않은 친구는 왜 저러고 살까 생각할 수도 있다. 음악 업계에서는 넌 언제든 발 빼고 의사할 수 있는 것 아니냐, 창작자로서 간절하게 일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상처를 주는 사람도 간혹 있었다. 나는 내 본캐가 작곡가, 부캐가 의사라고 생각한다. 음악 쪽으로는 어린 시절 상상에 비하면 이미 목표했던 바를 뛰어넘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엄청난 성공을 거두지는 못하더라도 재미있게 오래 일하면서, 직접 제작도 해보고 싶다. 그렇게 하기 위해 온라인 아카데미도 하고 있고 유튜브도 운영 중이다. 아무 대가 없이 날 도와준 방시혁 프로듀서처럼 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의사 일에 대해서는 전문의까지 마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직업적인 완성도가 조금 떨어지는 것은 아닐까 싶다. 그래도 나중에 여유를 찾는다면 어린 시절 꿈처럼 의료 봉사를 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본인처럼 팔방미인이어서 진로 고민하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여러 가지 일을 하는 게 무조건 좋다고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그럼에도 하고 싶은 일이라면 하고 살아야지. 어떻게 죽을지 모르지만 죽기 전에 내 인생을 후회하고 싶진 않다. 그렇다고 너무 무책임하게 들리진 않았으면 좋겠다. 예를 들어 음악이 좋아 직접적으로 음악 하는 일을 꿈꿨다고 해도 꼭 연주자, 작곡가, 가수 등 외에도 음악 관련 길은 다양하게 있으니 넓게 봐야 한다. 우선 자신이 어떤 일에 재능이 있는지 파악하고 또 재능 이상의 노력도 기울여본 뒤에서야 자신의 꿈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 작곡가 닥터 조는…
1986년 생으로 고려대 의과대학을 졸업한 의사이자 대중음악 작곡가다. 전 JYP퍼블리싱 소속 현 줌바스 뮤직그룹 소속으로 활동하며 아이유, 트와이스, ITZY, 구구단, 마마무, 유빈, 유빈, 갓세븐 등 수많은 아티스트들과 활발하게 음악 작업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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