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의 목표는 2025년까지 한국에 5만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만드는 겁니다.”
기업가치 500억 달러(약 55조원)를 인정받을 수 있을까(월스트리트저널 예상 시가총액). 쿠팡이 지난 12일(현지시각)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뉴욕증권거래소(NYSE) 상장을 위한 신고서를 제출했다. 창업 10년여 만에 전무후무한 ‘국내 기업의 미 증시 상장’이라는 도전에 나선 주인공은 김범석(43) 쿠팡 이사회 의장이다. 그는 신고서에서 ‘일자리 5만개’라는 새로운 목표를 제시했다. 현재 쿠팡 직원은 약 4만명으로 간접 고용 인력까지 합치면 5만명 수준이다. 5년 이내 10만명을 고용하겠다는 포부다.
대학 때부터 창업…커머스 관심, 직접 광고 영업
쿠팡은 12일(현지시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공시를 통해 뉴욕증권거래소(NYSE) 상장을 위한 신고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서울 송파구 신천동의 쿠팡 본사의 모습.
김 의장은 대기업 주재원이던 아버지를 따라 어린 시절을 주로 해외에서 보냈다. 중학생이던 1994년 미국에 정착했다. 이후 귀화해 국적은 미국이다. 그의 사업 DNA는 일찌감치 나타났다. 하버드대 정치학과 재학 시절 잡지 ‘커런트’를 창간한 뒤 뉴스위크에 매각했다. 김 의장은 “독자를 위한 콘텐트와 지역 광고주를 위한 커머스 결합에 관심이 많았다”며 “당시 광고 영업을 직접 했다”고 했다.
대학 졸업 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서 근무했다. 명문대 출신을 겨냥한 월간지 ‘빈티지미디어’를 설립하면서 다시 창업의 세계에 뛰어들었다. 이 회사를 매각한 이듬해인 2010년 한국에 돌아와 자본금 30억원으로 쿠팡을 설립했다. 당시 미국에서 인기를 끌던 소셜커머스 ‘그루폰’을 보고 자영업자가 많은 한국에 소셜커머스를 도입하면 성공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당시 그는 무명의 벤처기업인에 가까웠다. 오히려 현직 기획재정부 장관의 외동딸이 쿠팡 설립에 함께 했다 해서 큰 이목을 끌었다. 바로 윤증현 장관의 딸 윤선주(44) 전 이사다. SBS PD 출신인 윤 전 이사와 김 의장은 하버드에서 인연을 맺었다.
쿠팡은 빠르게 성장했다. 계기는 2014년 로켓배송을 선보이면서다. 2016년 매출 1조원을 넘어선 이래 매년 40~60%씩 성장했다. 지난해 매출은 120억 달러(약 13조원)에 달한다. 전년(62억 달러)보다 90% 이상 늘었다. 2018년 10억 달러(약 1조1000억원)가 넘던 영업 손실은 지난해 5억 달러(약 5500억원)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매출은 해마다 두 배 가까이 커졌지만, 적자는 절반 가까이 줄이고 있단 의미다.
현실 된 ‘쿠팡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
소비자에 대한 지배력은 실적 이상이다. 최근 3개월간 쿠팡에서 한 가지 이상의 제품을 산 이는 1485만 명(지난해 12월 말 기준)이다. 2년 새 60% 넘게 늘었다. 지난해 백화점 업계 1위인 롯데백화점의 고객 수는 837만명이다. “고객들로부터 도대체 쿠팡 없이 우리가 어떻게 살았을까 하는 말을 듣는 것”이라던 그의 목표는 현실이 됐다.
사용 금액도 꾸준히 늘고 있다. 소비자가 쿠팡에서 쓰는 돈은 분기당 평균 256달러(약 28만원)였다. 2018년(127달러)의 배가 넘는다. 한 번 쿠팡을 사용한 이는 계속 쿠팡에 머물며 구매 금액을 늘려간다는 통계도 공개됐다. 2016년 쿠팡에서 100만원을 썼던 이는 지난해 359만원을 쓴 것으로 나타났다. 로켓배송으로 대변되는 ‘락 인(Lock in, 소비자 묶어두기)’ 전략이 제대로 먹힌 것이다.
김 의장은 로켓배송을 선보인 초기부터 “전 세계에서 유일한 서비스로 적자와 흑자를 떠나 쿠팡이 이런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자체가 행운”(2015년 기자간담회)이라고 했다. 그가 “쿠팡은 정보기술(IT) 회사”(2016년 중앙일보 인터뷰)라고 칭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현재 쿠팡의 IT 개발자는 2000여명이다. 중국 상하이와 미국 실리콘밸리 등에서 소프트웨어를 개발한다.
“근거 없는 자신감에서 모든 것 시작” 손정의 어록
일본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이 2015년 10억 달러(약 1조1000억원)를 투자한 것도 로켓배송에 매료돼서라고 알려졌다. 이 투자는 쿠팡이 사업을 밀어붙이는 원동력이 됐다. 김 의장은 당시 “당장 적자가 나더라도 소프트뱅크의 투자금 1조1000억원 등 실탄이 있기 때문에 미래를 내다보고 투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의 인연은 더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내가 가진 것은 꿈과 근거 없는 자신감뿐이었다. 그리고 거기서 모든 것이 시작됐다.” 김 의장이 가슴에 품고 세계적인 기업가를 꿈꿨다는 손 회장의 어록이다. 손 회장 역시 쿠팡의 적자 논란이 지속하는데도 2018년 20억 달러를 추가 투자하며 김 의장에 대한 굳건한 믿음을 드러냈다. 김 의장은 “경영에 대한 간섭이나 투자금을 어떻게 써야 한다는 조건이 전혀 없다”(2016년 중앙일보 인터뷰)고 소개했다.
김 의장이 강력한 경영권 방어 수단인 ‘차등의결권’을 갖게 된 것도 투자자의 전폭적 신뢰 덕분이란 분석이 나온다. 신고서에 따르면 쿠팡은 김 의장이 보유하는 클래스B 주식에 대해 1주당 29배의 차등의결권을 부여할 계획이다. 이대로라면 김 의장은 상장 후 지분 2%만 가져도 주주총회에서는 지분 58% 수준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김 의장이 가진 쿠팡 지분율은 공개되지 않았다.
김 의장은 지난해 급여로 88만 달러(약 10억원)를 받았다. 여기에 스톡옵션 등을 더해 지난해에만 총 1434만 달러(약 160억원)를 챙겼다. 장대높이뛰기 선수 출신으로 알려진 동생과 배우자도 2018년 이후 72만 달러(약 8억원)의 연봉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주요 임원 중 지난해 보수가 가장 많은 이는 지난해 쿠팡에 합류한 투안 팸 최고기술책임자(CTO)였다. 그는 연봉과 스톡옵션을 합쳐 2764만 달러(약 305억원)를 받았다.
쿠팡의 NYSE 상장은 4월쯤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쿠팡은 이에 맞춰 1000억원 상당의 주식을 직원에게도 나눠줄 것이라고 했다.
김 의장은 신고서에서 “지난해 대부분의 기업이 고용을 축소한 것과 달리 우리는 약 1조원을 투자해 7개의 새로운 광역 물류센터를 짓고 수 천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서울 외에도 새로운 인프라와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수조 원을 투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4조5000억 누적 적자…한국 아닌 미국 선택 이유
이처럼 쿠팡이 한국이 아닌 미국 증시를 택한 건 누적 적자로 인해 한국에선 사실상 상장이 어렵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또 쿠팡의 사업 모델 특성상 대규모 투자금 확보가 시급한 이유도 있다. 쿠팡은 소프트뱅크 등을 통해 총 34억 달러(약 3조800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지만, 누적 적자는 지난해 말 기준 41억 달러(약 4조5000억원)가 넘는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뉴욕 증시는 전 세계 투자 자금의 70%가 몰리는 최대 자본 시장”이라며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려면 한국보단 미국이, 나스닥(NASDAQ)보다는 NYSE 상장이 더 유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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