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결국 이재용(52) 삼성전자 부회장을 삼성 경영권 부정 승계 혐의로 1일 재판에 넘겼다. 법정공방에 최소 5년이 걸릴 것이란 예측이 나온다. 검찰이 수사 결과를 내놓을 때까지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본격 수사에 착수한 지 1년 9개월여만이다.
수사팀 "조직적인 자본시장 질서 교란행위, 중대 범죄"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이복현 부장)는 이날 이 부회장과 최지성(69) 전 삼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 김종중(64) 전 삼성 미래전략실 전략팀장(사장) 등 삼성그룹 관련자 11명을 자본시장법 위반(부정거래행위, 시세조종), 외부감사법 위반(분식회계, 거짓공시) 등의 혐의로 불구속기소했다고 밝혔다.
이 부장은 "이 부회장과 미래전략실은 최소 비용으로 삼성그룹을 승계하고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이 부회장이 최대주주인 제일모직에 유리한 시점에 삼성물산 흡수합병을 일방적으로 결정했다"며 "자본시장법의 입법취지를 몰각한 조직적인 자본시장 질서 교란행위로서 중대 범죄"라고 강조했다.
이복현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장 [중앙포토]
검찰은 2015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과정 전반에서 이 부회장 승계를 위한 불법 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합병 전 과정을 '사기적 부정거래'로 본 것이다. 이 부장은 "각종 거짓 정보를 유포하고 불리한 중요 정보는 은폐했다"며 "주주 매수, 불법로비, 시세조종 등 다양한 불공정 거래 행위를 조직적으로 자행했다"고 말했다.
검찰은 삼성바이오로직스(삼바)가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에피스)를 2015년 12월 종속회사에서 관계회사로 전환하면서 기업가치를 2900억원(장부 가격)에서 4조5000억원(시장 가격)으로 부풀렸다고 밝혔다. 고의적 분식회계가 있었다는 판단이다. 그 과정에서 삼바와 에피스 설립에 참여한 미국 바이오젠의 콜옵션(주식을 매수할 수 있는 권리) 보유 현황 등 주요사항을 은폐해 거짓 공시했다고 봤다.
합병 전 삼성그룹의 지배구조를 보면 이 부회장이 최대주주였던 제일모직이 삼바를, 삼바가 다시 에피스를 소유한 구조였다. 이에 따라 에피스의 가치가 커지면 제일모직의 가치도 커진다. 이 부회장은 당시 제일모직 지분 23.2%를 보유했지만 삼성물산 지분은 없었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이 합병하면 이 부회장은 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삼성물산의 지분 16.4%를 확보해 그룹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검찰은 이런 상황을 고려해 삼성이 고의로 삼성물산의 가치는 낮추고, 제일모직의 가치는 높여 이 부회장에게 유리한 여건을 만들었다고 판단했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비율은 1대0.35로, 삼성물산의 가치가 제일모직의 3분의 1수준으로 평가됐다.
검찰은 이 부회장이 이런 과정에 직접 관여했다며 삼성 승계 계획이 담긴 '프로젝트G' 문건을 제시했다. 수사팀은 "미래전략실은 이 부회장 승계를 위한 에버랜드 중심의 승계 계획(프로젝트G)을 수립했고, 그 핵심이 '에버랜드(제일모직) 상장 후 삼성물산과 합병 계획인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합병 비율은 삼바 회계 변경 7개월 전에 법대로 산정"
삼성 측과 전문가들은 검찰이 제시한 공소 사실과 정반대 의견을 내놓았다. 먼저 합병 전 과정을 불법으로 보는 시각에 대해 삼성 측은 "합병은 경영상 필요성을 고려한 것으로,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며 "이미 관련 민·형사 재판에서 '삼바 회계 처리는 분식으로 단정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다"는 입장이다.
사기적 부정거래 행위가 있었다는 검찰 주장에 대해서는 "합병 비율 조작이 없는 사기적 부정거래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반론이 나온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비율은 삼바의 회계처리 기준 변경으로부터 7개월 전인 2015년 5월에 산정됐다. 이 부회장에게 유리한 합병비율을 만들기 위해 에피스의 가치를 높였다는 검찰 측 주장에 설득력이 떨어지는 대목이다.
이 부회장 측 변호인은 "합병 비율은 법에 정해진 대로 결정된다"며 "대기업 계열사 간 인수·합병 건수가 1000건이 넘는데, 이를 범죄시하면 기업 활동을 하지 말란 의미"라고 지적했다.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상장사의 합병가액 산정 공식이 정해져 있다.
최종학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합병 전 삼바의 회계 처리 변경이 있었어도 주가에는 거의 영향을 주지 못한다"며 "단순 회계처리 변경으로는 영업이익에 변동이 없어 미래가치가 증가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 걸린 깃발 뒤로 삼성 서초사옥이 보이고 있다. [뉴스1]
삼바가 자회사 에피스를 종속회사에서 관계회사로 변경해 기업가치가 증가한 것을 분식회계로 본 검찰 판단에도 반론이 제기된다. 당시 미국 바이오젠은 에피스 지분 15%를 보유했고, 에피스의 가치가 커지면 추가로 지분을 살 수 있는 콜옵션을 가지고 있었다. 삼성 측은 "당시 에피스 기업가치가 급등해 바이오젠이 콜옵션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아 삼바는 에피스를 종속회사에서 관계회사로 변경했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바이오젠은 삼성 측이 예상한 대로 2018년 11월 콜옵션 권리를 행사해 가치가 급등한 에피스 지분을 '50%-1주'를 확보했다. 또 현재 에피스의 가치는 당시 삼성이 평가했던 4조5000억원을 훨씬 뛰어넘는 20조원대로 평가받고 있다.
이동기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검찰은 삼바와 바이오젠이 콜옵션 계약을 한 이유가 경영권 승계 목적이라고 의심하고 있다"며 "하지만 그건 바이오젠이 해당 계약이 기업 이익에 더 유리한 조건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증거로 제시된 '프로젝트G'에 대해서 삼성 측은 이 부회장이 관여하거나 보고받은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이 부회장 측 변호인은 "박근혜 정부 들어서 삼성에 대한 맞춤형 규제인 금산분리·순환출자 금지·일감 몰아주기 금지 등의 법령이 만들어지려고 하자 규제에 걸리지 않도록 사전에 준비한 계획"이라며 "이 부회장 승계를 위한 비밀 계획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수사기록만 20만쪽, 재판 5년은 걸릴 듯…심의위 권고 무시
1년 9개월 간 이어진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 수사.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이번 기소는 검찰이 그동안 8차례 수사심의위 권고를 모두 따랐던 전례를 깼다. 때문에 검찰은 수사의 투명성과 공정성 확보를 위해 스스로 도입한 수사심의위 제도를 3년도 안 돼 무력화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수사팀은 "권고 후 수사 전면 재검토 결과 학계와 판례의 다수 입장, 사법적 판단을 통한 국민적 의혹 해소 필요성, 수사 전문가로 구성된 부장검사회의 검토 결과 등을 종합해 기소했다"고 밝혔다.
재판은 장기전이 될 전망이다. 수사기록만 20만쪽에 달하는 데다 수사 대상 관계자들이 300여명 수준으로 많아서다. 압수한 디지털 자료만 2270만건(23.7테라바이트) 분량이다. 법조계에서는 최소 5년 이상은 진행될 것으로 내다본다.
[출처: 중앙일보] 심의위 권고 무시하고 이재용 기소한 檢…5년 법정싸움 또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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