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로랑·발렌시아가 등 보유한 케링그룹 피노 회장
프랑수아 앙리 피노(55) 케링그룹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세계 명품업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오너 경영인이라고 할 수 있다. 케링그룹(옛 PPR)은 구찌, 보테가 베네타, 생로랑, 발렌시아가, 알렉산더 맥퀸, 스텔라 매카트니, 브리오니, 부쉐론 등 19개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브랜드들은 각자 속한 부문에서 최고 위치에 있고, 경영실적은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지난해 3분기 그룹 매출액은 2015년 같은 기간보다 10.5% 증가했다. 구체적으로는 구찌가 17%, 생로랑이 33.9% 성장했다.
케링그룹 피노 회장은 건설·유통 등 다양한 사업을 망라하는 그룹을 물려받은 지 10여 년 만에 매출액 14조원 규모의 럭셔리 전문 기업으로 키웠다. [사진 김경록 기자]
그는 아버지 프랑수아 피노(81)가 1963년 프랑스에서 창업한 회사를 물려받은 2세 경영자다. 하지만 지금의 케링그룹은 그가 일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버지가 목재 수출업으로 시작해 가구·홈쇼핑·건설 등으로 확장한 사업을 아들은 대대적인 혁신을 통해 라이프스타일 전문 기업으로 탈바꿈시켰다. 포브스 ‘2016 억만장자 리스트’에 따르면 피노 가족의 재산은 148억 달러(약 18조원)로, 프랑스에서 넷째로 많다. 지난해 12월 국내 사업 점검차 방한한 그를 만났다.
보테가 베네타 인수 후 15년 만에
매출 430억 → 1조6000억, 37배 늘어
한국 시장은 케링그룹에 어떤 의미인가.“프랑스·영국보다 규모가 큰 세계 5대 시장이다. 아시아 지역 전체에 미치는 영향력까지 감안하면 중요도는 더욱 커진다. 내국인 고객이 약 80%를 차지한다. 외국인 관광객 비중이 낮으니 변동성이 적고 안정적이다. 고객 요구사항이 많고 까다로운 것도 특징이다. 세계에서 가장 까다로운 한국 시장에서 잘하면 상품 퀄리티와 고객 서비스가 좋다는 방증이다. 그래서 잘하고 있는지 알아보는 벤치마크로 활용한다.”
도대체 어느 정도이길래.“핸드백을 예로 들면 한국 고객은 거의 눈에 보이지도 않는 아주 사소한 결함까지 찾아낸다. 경이롭다. 제품에 쏟는 관심이 크기 때문이다. 결함을 직원에게 적극적으로 알리고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다른 나라에서는 결함을 발견하면 물건을 사지 않고 조용히 나간다. 퀄리티는 럭셔리를 구분 짓는 차별점이기 때문에 아주 중요한 문제다.”
소속 럭셔리 브랜드의 성격이 중복되지 않는데, 인수합병에 황금률이 있나.“럭셔리 시장의 비전을 연구해 먼저 큰 그림을 그린다. 한 축에 가격, 다른 축에 카테고리를 놓고 시장을 분류한다. 어느 세그먼트를 채워야하는지 먼저 정한 뒤 해당 브랜드 인수를 시도한다. 한 그룹 안에서 서로 경쟁하게 되면 가치를 창조하기 어렵기 때문에 동종 경쟁은 철저히 피한다. 아무리 좋은 매물이 나와도 기존 브랜드를 잠식할 우려가 있으면 인수하지 않는다. 인내심을 발휘해야 하는 일이다. 썩 나쁘지 않은 브랜드를 갖는 것보다 아무것도 없는 게 차라리 낫다. 주얼리 브랜드는 기회를 잡기 위해 10년을 기다리기도 했다.”
인수할 때 개인 취향은 어느 정도 반영하나.“나 스스로 럭셔리의 고객이기 때문에 내 목소리를 듣는 게 의미가 없진 않지만, 실제로는 의사 결정자 중 한 명의 의견으로만 받아들이도록 했다. 내 의견이 다른 사람보다 가중치를 갖지 않는다. 시계 컬렉터로서 시계 사업에는 특히 관심이 많다. 그래서 시계 부문은 개입하지 않으려고 더욱 조심한다. 럭셔리 사업에 필요한 자질은 제품 자체에 대한 지식보다는 시장을 읽는 힘이다.”
작은 브랜드를 키우는 능력이 탁월하다.“2000년 보테가 베네타를 인수할 당시 매출액이 3400만 유로(약 430억원)였는데 2015년에 12억 8600만 유로(약 1조6000억원)로 뛰었다. 무명에 가까운 스텔라 매카트니를 영입해 브랜드를 함께 만들었다. 크리스토퍼 케인, 토마스 마이어 같은 신인 디자이너들의 스타트업 브랜드 2~3개를 꼭 보유해 새로운 흐름을 놓치지 않는다. 위험을 감수하고 미래지향적인 것을 제시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구찌나 발렌시아가를 보면 알 수 있다.”
덜 알려진 창의적인 디자이너 발탁
브랜드 새롭게 재창조하게 만들어
구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레산드로 미켈레를 격려하고 있는 케링그룹 회장(왼쪽)과 부인 셀마 헤이엑(오른쪽).
피노 회장은 이름이 덜 알려진 패션 디자이너를 과감히 발탁해 브랜드를 맡기고, 이들이 마음껏 재능을 발휘해 브랜드를 완전히 새롭게 재창조하는 성공 사례를 만들고 있다. 2년 전 성장 정체에 허덕이던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알레산드로 미켈레로 전격 교체한 뒤 뜨거운 관심을 받는 브랜드로 변모시켰다. 미켈레는 대담한 색깔과 프린트, 소재를 절묘하게 섞어 톡톡 튀면서도 웨어러블한 스트리트 스타일 럭셔리 패션을 성공적으로 선보였다.
발렌시아가의 뎀나 즈바살리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아랫단 길이가 다른 셔츠, 어깨를 뒤로 젖힌 듯 입는 재킷 등 평범한 옷을 살짝 비트는 스타일을 제시해 젊은 층으로부터 폭발적인 지지를 얻고 있다.
2017년 봄·여름(SS) 구찌 패션쇼.
인재를 보는 안목이 남다른 것 같다.“사람에서 출발하는 게 아니라 브랜드가 가진 창의성을 정의하는 게 먼저다. 브랜드를 독창적이게 하는 창의적 포인트와 디자인적 요소를 연구해 재정립한 뒤 그에 맞는 재능을 가진 사람을 찾아서 합을 맞춘다. 디자이너가 브랜드를 잘 해석하려는 노력으로는 충분치 않고, 자신의 개성을 집어넣어야 한다. 나는 브랜드의 과거를 꺼내 오지 않는다. 업계에서 흔히 저지르는 실수가 과거에 얼마나 영화로웠는지, 과거와 얼마나 똑같은 방식으로 지금도 제품을 만드는지 알리는 데 치중하는 것이다. 구찌는 1921년 만들어진 브랜드지만 젊은 세대에게 말을 건다.”
e커머스는 고객 편의 위한 서비스
럭셔리는 대중과 일정한 거리 둬야
보테가 베네타의 2017 SS 패션쇼. 2000년 브랜드 인수 당시 430억원이었던 매출액이 2015년에 1조 6000억원으로 뛰어 ‘미다스의 손’을 증명했다. [사진 케링그룹]
대중을 위한 디지털 시대에 소수를 위한 럭셔리는 어떤 모습일까.“럭셔리 사업의 본질은 대중에게 욕망을 불러일으키고, 판매는 그중 소수에게 하는 것이다. 인터넷은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고 전파해 욕망을 일으키기에 훌륭한 도구다. 하지만 판매를 대중화하기 위한 것이 돼서는 안 된다. e커머스는 기존 고객의 편의를 위해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하는 차원이지 새로운 고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장치여서는 안 된다. 많은 사람이 두 가지를 혼동한다. 대중과 일정한 거리 두기는 럭셔리에는 필연이다.”
럭셔리 전문 기업으로 바꾼 결정을 한 계기는.“2003년 아버지가 66세, 내가 40세 때 회사를 물려받았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국가 간 장벽이 높아 회사를 키우기 위해선 한 지역 안에서 여러 분야를 다룰 수밖에 없었다. 2000년대 들어 시장이 개방되자 한 분야에 집중하면서 지역을 다양화하는 경영이 가능해졌다. 당시 럭셔리 부문이 글로벌화가 가장 많이 진행됐던 터라 특화하게 됐다.”
한국 자동차·전자 분야 럭셔리 보유
음식도 미식 대국 프랑스만큼 훌륭
2015년보다 33.9% 성장한 생로랑의 2017 SS 패션쇼. 어깨를 강조한 스타일이 과거 이브 생로랑 디자이너 시절로 되돌아간 듯하다. [사진 케링그룹]
한국에서도 럭셔리 브랜드가 나올 수 있을까.“비전을 갖고, 그 비전을 지속적으로 밀고 나갈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럭셔리 브랜드를 제한적으로 볼 필요도 없다. 한국은 이미 자동차·전자 분야에서 최고라 할 만한 럭셔리 제품을 갖고 있다. 프랑스인의 시각에서 한국 문화는 섬세하고 세련됐다. 음식은 미식 대국인 프랑스만큼 훌륭하다.”
당신에게 진정한 럭셔리란.“돈은 아니다. 내가 하는 일 덕분에 정치·예술계 등 다양한 분야의 훌륭한 사람들과 교류할 기회가 많은 게 럭셔리 아닐까. 좋은 와인과 그림도 좋지만, 이를 즐기려면 주변에 좋은 사람이 많아야 한다. 사람이 제일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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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BOX] 매니저 60%, 이사회 멤버 64%가 여성…임금 전액 주는 출산휴가 14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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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링그룹은 올해 1월부터 세계 60개국에 있는 모든 임직원에게 파격적인 ‘출산휴가’ 제도를 도입했다. 출산한 여성은 최소 14주의 유급 출산휴가를 쓸 수 있고, 이 기간 임금은 회사가 전액 지급한다. 아빠가 된 남자 직원은 5일간 유급 휴가가 보장된다. 웬만한 국가 정책보다 혜택이 좋다.
케링그룹은 일찍부터 양성 평등과 여성 인재 양성에 힘을 쏟았다. 프랑수아 앙리 피노 회장은 “남녀가 경력 관리에서 격차가 벌어지는 이유를 들여다보니 여자는 직업적 야망을 남자와 같은 방법으로 표현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1~10 사이에서 평균적으로 여성은 8단계까지 기다린 뒤 승진이나 보직에 대한 의사 표시를 하지만 남자들은 6단계쯤부터 시작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임직원 정기 면담 시 여성이 야망을 적극적으로 표출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그 결과 매니저급의 60% 이상, 이사회 멤버의 64% 이상이 여성이다. 생로랑, 부쉐론 브랜드 등은 여성이 최고경영자(CEO)다.
젠더 이슈 외에도 환경 등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심혈을 기울인다.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사회의 바깥쪽에 있게 되고, 결국은 위험해진다. 기업은 속해 있는 그 사회를 거울처럼 담아야 한다. 양성 평등이나 인종과 문화적 다양성, 지속 가능한 환경을 위한 노력을 반영하지 않으면 핵심을 놓치는 것이다.”
[출처: 중앙일보] [해외 CEO 인터뷰] 성장 멈춘 구찌 1년 새 17% 키운 명품 ‘미다스의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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