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반 고흐는 1853~1890년대의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이다.
1888년에 그린 사이프러스가 있는 과수원은 그림의 낙찰가가 1600억이였다.
그가 유년기를 보낸 곳은 네덜란드의 준데르크였다.
고흐는 6남매의 장남이였다.
11살에 그린 그림,11살부터 기숙사에 들어갔음.집에 돌아가고 싶어했는데 부모님이 반대.좌절감과 부모님의 사랑의 결핍이 있다.
고흐는 1869년 16세의 나이에 큰아버지의 도움으로 아트 딜러라는 직업을 얻게 된다
구필화랑에서 일하며 한달에 10,000,000을 벌었다. 고수익이었다.7년간 일했다. 가족에게 편지를 보낼때마다 펜으로 그림을 그려보냈다.
현존하는 고흐의 유일한 실물 사진이다.
고흐는 밀레의< 만종> 작품에 감동과 영감을 얻는다.이 그림에 빠져들었다
고호는 그림의 배경을 설명하여 동생테오와 편지를 주고 받았다.
27세에 화가의 꿈으 갖고 도전한다.
사별한 사촌누나를 사랑한다. 가족의 반대에 부딪혀서 1881년에 네덜란드의 헤이그로 떠난다.
자신만이 구원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돈이 없어서 시앤은 다시 매춘을 시작했다,
첫 작품은 감자먹는 사람들-일하는 사람들의 손을 잘 표현했다.1884~1885년 그림 인생에서 가난한 노동자의 그림이 그의 가치관에 중요했다.
프랑스의 아를에서 그림을 그리기로 35살에 1885년의 운명적 장소 기차소리의 소음으로 가득했던 집.37세에 37번이사를 했다. 이 집의 2층방에 앉아서 파이프 담배를 피울 때가 가장 안정적이고 행복했다.
테라스-파란 하늘밤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따뜻하게 그렸다.
고갱을 위해 그린 고호의 역작인 해바리기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꽃.유럽에서는 건강,삶 그리고 돈을 불러오는 상징이 해바라기라고 한다.
환청과 신경증이 있었던 고호.고호를 낮추어보는 고갱의 속마음 고갱과의 충돌에도 고갱이 떠나고 발작을 일으킨 고호가 자신의 귀를 자름.(42년에 기억을 더듬어서 그린 그림)
1895년 치료를 위해 파리 오베르로 옮긴다. 오세르의사의 건강 도움을 받는다. 1890년7월27일에 낡은 총을 들고 옥수수밭으로 들어가 가슴에 총을 겨눈다.집으로 돌아오지만 ,,,
사이프러스나무,십자가를 만들던 나무로 기독교에서는 애도의 뜻을 표현하지않았을까? 필획이 꼼꼼히 처리됨.
고흐가 어떻게 이렇게 많은 그림을 그릴 수가 있었을까
1884년 작품 10점이 출품
조카 생명의 탄생을 축하-1890년 꽃피는 아몬드 나무-그리고 나서 며칠을 알아누웠다.
고호를 세계적인 화가로 등극하게 한 요한나 반고호,테오 아내의 마케팅 전략은 ?
1.그림의 가치를 높여라
2.스토리를 만들다-형제의 편지를 모아 책으로 발간하다
3.누구나 고호의 그림을 보도록 국립박물관에 그림을 팔았다.
4. 형제의 애를 돋보이게 했다. 고흐가 죽고 6개월후에 죽은 동생테오의 무덤과 고흐의 무덤을 나란히 했다. 해바라기로 헌화한다.
5. 고흐의 명성을 높인 또다른 인물은 고흐의 조카 고흐 주니어는 고흐의 뮤지엄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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