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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CEOCOACHING/경영자 예술1:1코칭

박경리작가가 만나본 이건희의 인상,창조적 감상이 느껴지는 위대한 업적의 예술 CEO DNA

by 달리코치 2022. 9. 11.

박경리작가/1972년 서울 장충동 자택에서 (왼쪽부터 시계방향)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 이명희 신세계 그룹 회장,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이인희 전 한솔그룹 고문,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삼성

깊은 곳에 가라앉아서 세상을 응시하는 듯한 눈빛이였다. 웃는 모습은 스스러워하듯, 그러나 천진했다. 박경리작가가 96년 호암예술상을 받으며 처음 이건희 회장을 만났을 때의 인상이다. 수상을 계기로 삼성문화재단의 뚜렸한 지표,학술과 예술에 대한 이해와 애정을 느낄 수 있었으며, 실로 광범위한 문화 사업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수백억원의 예산과 100여명의 직원들이 활동한다는 재단의 규모에 놀라기도 했다.

고(故) 이건희 회장이 생전에 유일하게 쓴 책.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는 부제(副題)를 달았다. 1997년 11월 출간 당시 판매가는 6500원이었으나 최근 온라인 중고서적 사이트에서 한 권당 20만~30만원에 거래되고 있다./조선일보DB에서
97년12월21일에 1독,2018년12월18일 삼성기업 연구 수업으로 대학원수업시 2독,22년09월 기업특강을 위해 다시 3독중이다.

욕망

살면서 어지러운 현실을 볼때에 사람의 욕망의 끝은 어디일까? 하고 자문할 때가 있다. 욕망은 삶의 불꽃같은 것이지만 지나치면 업화가 되어 몸을 태우고 파멸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락과도 같은 곳에서 건져내 본연으로 회귀하게 하는 것이 문화예술의 역할이지않을까? 욕망이 빚어낸 혼란의 가닥을 잡아주고 방향 제시를 하는 것도 문화사업일 것이다.

낯설움의 불안과 공포-내면 촉수-극복의지와 탐구-그리움 투사된 능동적 모색

욕망과는 다르게 사람에게는 낯설움에 대한 불안과 공포가 있다. 새로운 사물에 대한 인식 때문인지 강렬한 감정이며,때에 따라서 소외감, 고립감 같은 것이기도 하다.
욕망이 대체로 소모적이며 상대적인 데 비하여 낯설어 하는 마음은 내면에서 대상으로, 대상에서 총체로 섬세하게 뻗어나가는 촉수 같은 것이며 ,그것은 낯선 것을 극복하려는 의지와 탐구하고 접근하려는 그리움이 투사된 능동적 모색이다.

창조적 충동- 정치.경제.예술-위대한 업적-충동에 헌신

부연하자면 창조적 충동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정치든 경제든 예술이든 어떠한 분야에서든 위대한 업적그러한 충동에 헌신하는 것으로 이룩된다.
창조는 낯설어 하는 개인의 영혼으로부터 출발한다. 골짜기의 물이 은밀하게 흘러서 바다에 이르듯 창조적 영혼의 깊이와 넓이다 깊을 수록 넓을수록 수많은 삶으로 확대되어 친화의 세계로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욕망은 취하는 것이다. 파멸을 예비하고 있으며 성취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욕망무한이라 하던가.

창조적 감성, 그것을 느끼게 했던 것

박경리작가의 눈에 이건희회장은 독특하게 비쳐졌다. '삼성'이라는 거대한 조직을 이끄는 사람이면 비범한 것은 당연하겠으나 활달해 보이지 않았다. 능란하고 세련돼 있지도 않았다. 그러나 섬세하고 치밀하고 스스러워하는 듯한 그 점 때문에 독특했다. 창조적 감성, 그것을 느끼게 했던 것이다.-이건희 에세이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129Page-중에서 발췌

홍라희여사

삼성문화재단 창립 50주년 맞아,반백년 동안 한국 문화 알리기·예술 대중화에 앞장서 지난 1965년 4월 2일 고 호암 이병철 삼성 선대 회장은 사업을 시작하면서부터 숙원으로 생각했던 삼성문화재단을 설립했다.

삼성문화재단

당시 우리나라는 일제 수탈 시대와 한국전쟁을 지나며 주요 문화재 상당수가 유실되거나 해외로 밀반출 되던 것이 부기지수였다. 사업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자 삼성문화재단 설립부터 서두른 것도 이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1980년 아버지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과 함께한 이건희 부회장. 당시 이건희는 38세였다./조선일보DB 미국 조지워싱턴대 경영대학원



사업을 일으켜 국가에 보은 하겠다는 '사업보국'의 창업이념이 육영과 문화, 복지사업을 이라는 대의를 위해 문화재단을 설립한 것이다.
'호암자전'에서 고 이병철 회장은 "본인은 금번 소유재산을 던져 다년간의 숙원이었던 육영과 문화, 복지사업을 위해 삼성문화재단을 창설하기로 했다.(중략) 개인생활 영위에 필요한 범위를 훨씬 초과하는 재산은 이것을 계속 사유해 사장·방치하느니보다 국가 사회를 위해 유용하게 전환·활용하는 것이 옳다고 늘 생각하여 왔던 것입니다"고 문화재단의 설립 취지를 밝혔다.

40여년간 삼성문화재단은 우리나라 문화와 예술을 전문화 하고 국제화 하기 위한 다양한 문화예술 사업을 전개해왔다. 지난 1969년 5월 충남 아산의 현충사 중건 사업비 지원을 시작으로 1971년에는 고 이병철 회장이 생전 수집했던 미술품들을 모아 '호암 수집 한국미술특별전'을 열기도 했다.

1982년에는 호암 미술관을 개관했다. 이곳에는 호암이 30여년에 걸쳐 수집한 개인 소장품들이 전시돼 있다. 1991년에는 서울국제미술제 인수, 92년에는 호암갤러리를 인수해 운영하기 시작했으며 서울국악대경연,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한국식 개관 지원 등에 나섰다. 해외 미술관, 박물관과의 교류도 꾸준히 하며 한국 문화와 예술 알라기에 앞장서고 있다.

호암미술관은 개관이래 한국 전통미술 알리기에 여념이 없다. 조선 백자전, 근대 유화 명작전(박수근, 이중섭, 김환기, 이인성), 조선 후기 국보전, 김홍도와 궁중화가, 한국미술 속 용 이야기전 등 우리나라 전통 예술을 대중화 시키기 위한 다양한 전시들을 진행해왔다.

호암미술관의 전통정원인 '희원'은 일본식, 중국식 정원이 주를 이루고 있는 현실 속에서 한국적인 미를 찾기 위해 만들어졌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사립 미술관과 정원을 통해 한국의 미를 알리고자 노력해온 것이다.

삼성문화재단의 이사장을 맡고 있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지난 2004년 이태원에 또 다른 미술관 '리움(Leeum)'을 개관했다. 리움은 한국 고미술과 현대 미술의 공존을 테마로 해 만들어졌다. 우리나라 고미술품 전시를 위한 뮤지엄1과 국내외 근·현대미술품 전시를 위한 뮤지엄2, 미술관 입구에 자리잡은 삼성아동교육문화센터를 포하한 교육 관련 시설로 이뤄졌다.
리움은 개관 초기부터 미술의 대중화와 선진화를 표방했다. 국내 최초로 스마트폰을 활용해 전시품들의 설명을 들을 수 있는 '스마트 가이드'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이어 2013년 열린 '리움 금은보화전'에선 전시품의 세밀한 부분까지 관람할 수 있도록 디지털 관람 시스템을 제공하는 등 첨단 IT 미술관으로도 거듭나고 있다.

전시 뿐만 아니라 다양한 예술지원 사업도 꾸준히 진행중이다. 파리국제예술공동체에 15평 규모의 아틀리에를 운영 사업이 대표적이다. 파리국제예술공동체는 음악, 무용, 건축, 문학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이 작품 활동을 하는 공간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 영국, 일본, 독일 등 28개국이 독립관을 두고 자국 문화와 예술을 소개하고 있다.

“목숨 건 도박 같았다” 삼성과 한국을 바꾼 이건희의 3가지 

1993년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은 미국 등 선진국 언론들의 주목을 받았다. 미국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 1994년 2월28일자는 이건희 회장을 커버스토리로 다루며 '삼성 경영 혁명'이란 표지 제목을 달았다./인터넷 캡처
<삼성 新경영>책자

 

삼성 신경영 실천위원회가 1993년 9월 10일 사내 비매품(社內 非賣品)으로 발행한 <삼성 新경영>책자. 1993년 6월7일부터 약 3개월 동안 이건희 회장이 한 8500쪽 분량에 해당하는 발언을 199쪽으로 정리했다./송의달 기자

이건희회장의 스스로 경영공부법은

(1)집으로 전문가를 불렀다.- 일본 기술자만 수 백명

1978년 삼성물산 부회장, 1979년 삼성그룹 부회장을 맡아 후계자로 공식화된 뒤에도 이건희는 외부 사람들을 만나 시간을 보내기 보다 집에서 경영·기술 관련 책을 읽거나 전자제품을 분해·조립하며 지냈습니다. 수시로 전문가들도 불렀습니다. 그는 사석에서 “주말에 우리 집에 초대해 한 수 배운 일본 기술자만 수 백명을 넘는다”고 했습니다.

(2)일본인 고문들은 삼성에 조언과 정보를 주는 것을 아끼지 않았다

조용상 전 일본삼성 사장은 “이건희 회장은 일본인 기술 전문가들을 정말 극진히 대접했다. 당신 스스로를 낮추고 예의와 성의를 다하는 모습에 감동한 일본인 고문들은 삼성에 조언과 정보를 주는 것을 아끼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경제사상가 이건희’ 76~77쪽)

(3)이건희의 ‘지독한 공부’는 20대 후반부터 시작됐고 자신과 삼성, 나아가 대한민국의 명운(命運)을 바꿈

사실 이건희의 ‘지독한 공부’는 20대 후반부터 시작됐고 자신과 삼성, 나아가 대한민국의 명운(命運)을 바꾸었습니다. 이건희는 “1961년 일본 와세다대 상학부로 유학가기 이틀 전 아버지로부터 ‘네 성격엔 기업이 안 맞는 것 같다. 매스컴이 어떻냐?’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1989년 12월 <월간조선> 인터뷰에서 밝혔습니다.

(4)삼성 임원의 훌륭한 비매품 사내공유 비책

이 책은 200억의 회사가 2조를 달리며 모든 앞서가는 회사의 경영을 벤치마킹 할 때(2005년)에 회사임원이 공수해온 한국의 간판CEO 삼성전자 윤종용 부회장의 그룹의 간부에게만 공개한 성공비결이 담긴 경영비책이다. 

한국의 간판CEO 삼성전자 윤종용 부회장의 그룹의 간부에게만 공개한 성공비결이 담긴 <경영비책경영비책의 10가지>를 정리해보면 

1.항상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

2.지혜,통찰력과 선견력이 있어야 한다.

3.변화를 주도하고 추진할 강력한 리더십이 있어야 한다.

4.인재가 되고 또 인재를 키우자

5.솔선수범하고 현장경영을 해야 한다.

6.국제감각이 있어야 한다.

7.꿈과 비전과 목표가 있어야 한다.

8.창의적이고 도전적이어야 한다.

9.스피드와 속도가 있어야 한다.

10.신뢰가 있어야 한다.

경영전문 코치의 tip :홍라희 여사를 며느리로 선택할 때부터 예술의 중요성을 인식하신 이병철회장은 기업을 키워가며 2세경영을 준비하며 미대 며느리를 봐야 한다고 이건희회장과 선친 이병철회장은 대화했고 실제로 서울대 응용미술학 학사를 공부한 홍라희여사를 며느리로 정했다. 부자 유태인의 삼대 부자공부 준비처럼 경영의 시작과 끝을 시뮬레이션하고 결과를 예측하여 실수를 미리 예방하며 경영해온 이건희회장의 일 방식을 이건희 에세이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는 책의 관심 목차를 골라서 삼독을 하며 경영의 더 깊은 통찰을 되새김해본다.

참고한 책
삼성 新경영(1993년), 이건희 에세이(1997년), 이건희(홍하상·2003년), 스물일곱 이건희처럼(이지성·2009년), 이건희의 서재(안상헌·2011년), 이건희 27법칙(김병완·2012년), Samsung Rising(Geoffrey Cain·2020년), 경제사상가 이건희(허문명·2021년·이상 출간 순서 기준), 월간조선(1989년 12월호)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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